파닉스는 영어의 기본이니까 당연히 가르쳐야 하는 거 아닌가? 영어를 시작할 때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세요. 하지만 영어를 전공하고, TESOL까지 공부한 저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아이에게 파닉스를 가르치지 않았어요. 수년간의 티칭 경험과 언어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내린 결정이었어요. 오늘은 그 이유들을 하나씩 풀어볼게요!
1. 규칙이 너무 많고, 아이가 구분할 수 없어요
영어에는 소리(음소)가 약 40개 정도 있는데, 이걸 표현하는 철자 조합은 1,700가지가 넘어요. 즉, 하나의 소리를 나타내는 방법이 평균 44개나 된다는 뜻이죠. 예를 들어 [f] 소리 하나만 해도
• f (fan)
• ph (phone)
• gh (enough)
이렇게 다양한 철자가 가능해요. 그런데 이걸 아이가 어떻게 구분할까요? “이건 규칙이고, 저건 예외야”라는 판단은 어른도 헷갈리는데, 아이 입장에선 그냥 다 낯선 단어일 뿐이에요. 파닉스를 아무리 배워도, 실제로 읽을 땐 ‘이건 예외인가? 규칙인가?’ 이걸 매번 고민하게 돼요.
2. 50%라는 수치, 컴퓨터에 200개 넘는 규칙을 넣고 나온 거예요
“영어 단어의 절반은 파닉스로 읽을 수 있다”는 말, 많이들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이 수치가 어디서 나왔는지 아시나요? 사실 이건, 컴퓨터에 200개가 넘는 파닉스 규칙을 입력해서 겨우 50%의 단어를 정확히 소리 내게 만든 결과예요. 말 그대로, 엄청난 처리 능력을 가진 기계가 수백 개의 조건을 갖추고 나서 겨우 읽어낸 거죠. 우리는 컴퓨터가 아니에요. 아이도, 부모도, 선생님도 컴퓨터처럼 작동할 수는 없어요.
3. 실제로 도움이 되는 파닉스 규칙은 15% 이하예요
교육학자 Clymer 박사는 파닉스 규칙을 121개로 정리한 뒤, 아이들이 실제로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 실험했어요. 그 결과는 꽤 충격적이었어요. 실제로 쓸만한 규칙은 단 18개. 게다가 그 규칙들도 정확도 50%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요. 예를 들어, 우리가 자주 듣는 “두 모음이 나란히 있으면 첫 번째 모음이 소리를 낸다”라는 유명한 규칙조차도 정확도가 45%밖에 안 됐어요. 저는 이걸 보면서, ‘아이에게 121개의 규칙 중 100개 이상은 결국 헷갈림으로 남겠구나’ 싶었습니다.
4. 영어 철자는 언어가 아니라 역사예요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이에요. 영어의 철자 체계는 말 그대로 역사의 흔적이에요.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의 영향으로 소리는 바뀌었는데 철자는 그대로 남은 경우가 정말 많아요. 예를 들면,
• knight [nait] – k는 왜 안 읽히죠?
• debt [det] – b는 왜 있을까요?
• colonel [kə́ːrnl] – 철자랑 발음이 전혀 안 맞죠?
이런 단어들, 파닉스로 설명할 수 없어요. 이건 규칙을 익혀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아이 입장에선 “왜 이렇게 써요?”라는 질문에 납득할 수 있는 답이 없는 구조예요. 그래서 저는 파닉스를 언어의 규칙으로 보기보다는 최소한의 읽기에 참고할 수 있는 힌트 정도로만 활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5. 결국 읽기는 소리내기가 아니라 이해하기예요
아이들이 영어 단어를 정확히 소리 낼 수 있어도,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읽기의 목적은 발음이 아니라 이해인데요. 파닉스로 정확히 읽었다고 해도 뜻을 모르면 그건 그냥 소리 연습일 뿐이죠. 반대로, 어떤 단어는 읽지는 못해도 맥락으로 의미를 추측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파닉스를 가르치는 대신, 반복적으로 듣고, 말하고, 문맥 안에서 단어를 익히는 환경을 만들어 줬어요. 처음엔 더딜 수 있지만, 그 과정이 쌓이면 읽기 자체가 자연스러워져요.
💬 파닉스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
파닉스에 대해 궁금하실 만한 내용들을 정리해 보았어요.
Q1. 학원에서는 왜 파닉스를 그렇게 강조할까요?
가르치는 과정이 눈에 보이고, 진도를 나가거나 평가하기 쉬워서예요. 단기간에 성취감을 맛볼 수도 있고요.
Q2. 파닉스를 아예 안 해도 괜찮나요?
아이의 상황에 따라, 가볍게 시작해볼 수도 있어요. 다만, “파닉스부터 시작해야 한다”거나 “파닉스를 안 하면 읽기를 못 한다”는 건 절대 사실이 아니에요. 즉, 파닉스를 무조건 가르쳐야 하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에요.
Q3. 파닉스를 배우면 발음이 좋아지나요?
꼭 그렇진 않아요. 영어 발음은 듣기 기반이에요. 정확한 소리를 자주 듣고 따라해보는 경험이 발음 향상에 더 도움이 됩니다.
Q4. 우리 아이는 지금 배우고 있는데, 문제 없을까요?
배우는 것 자체는 좋아요. 파닉스가 읽기의 전부는 아니고, 이걸 좀 못한다고 해서 영어를 못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세요.
✅ 마무리하며
혹시 지금 파닉스를 가르치고 계시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좋은 시도예요. 다만, 이 글을 통해 “꼭 파닉스를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라는 새로운 시각도 함께 가져가셨으면 해요. 파닉스는 도구일 뿐, 목적은 아니니까요. 읽기의 진짜 목적은 이해이고, 그 시작은 흥미와 노출이에요. 저는 아이가 영어를 좋아하고, 자신감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어요. 그게 결국 읽기 실력으로도 이어집니다.
🔎 참고자료